[기획] 지속가능한 농기계 ODA ①한국 ODA 잔혹사, 사업이 끝나면 농기계도 멈춘다
사후관리 예산·인력, 사업 종료와 함께 소멸…캄보디아 등 현장서 확인 비싼 가격·현지 규격 불일치 등도 원인…국산 농기계 외면 받는 ODA 시장 점검
우리나라의 농기계 공적개발원조(ODA)는 사업이 종료되면 사후관리 예산도, 이를 책임질 인력도 함께 사라진다. 부품 하나를 구하지 못해 멈춰 선 트랙터와 이앙기는 그대로 창고에 방치된다. 공적개발원조는 본래 우리 농기계가 그 나라 시장에 발을 들이는 교두보가 돼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사업이 끝난 자리에는 한국 기업이 올라설 발판 대신 한국 농기계는 고장 나면 고칠 수 없다는 평판이 남는다. 왜 우리나라 농기계는 ODA와 연계된 시장에서 외면받고, 선택받지 못하는지 구조적 문제를 짚어본다.
국산 농기계, 5조 원 ODA 사업에 설 자리가 없다
ODA란, 정부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복지증진을 위해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국무총리 소속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정책 전반을 총괄하고, 집행은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무상원조를,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외경제협력기금을 통해 유상원조를 맡는 이원 체계로 이뤄진다. 농업 분야는 외교부 산하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농촌개발을 중점 분야로 삼아 관개시설, 수확 후 관리, 새마을 기반 농촌개발 사업 등을 수행하고, 부처가 제안한 사업을 함께 기획하는 공동기획사업도 운영한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별도로 사업을 추진하는데, 농진청이 2009년부터 운영해온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코피아·KOPIA)이 대표적이다. 2026년 우리나라 ODA 사업 규모는 5조 4372억 원으로 37개 기관이 1763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ODA와 연관된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 시장 포화의 돌파구로 ODA(공적개발원조)사업에 참여한 농기계 업체들은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ODA 사업에 참여했던 이력 탓에 실명을 밝히기 어렵다는 농기계 A업체 대표는 “ODA 사업을 통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려 했으나, 현지에서는 여전히 저가의 타국산 기계를 조달해 사용하고 있다”며 “우리 예산이 투입된 사업임에도 정작 한국 농기계가 외면받는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한국산 기계를 보내려 해도 통관이나 운송비가 예산에 반영돼 있지 않다”며 정부 지원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ODA라는 유망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국산 농기계의 해외 진출이 막히면서 관련 기업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유독 ODA 사업에서 한국 농기계가 현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난항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캄보디아 농가 60.2% 비용 부담… 성과 났지만 기계는 멈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내놓은 ‘2025 국제농업협력(ODA) 평가’ 가운데 한국농어촌공사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사업비 42억 원 규모로 시행한 ‘캄보디아 영농기술전수를 통한 농업생산성 증대사업’ 사후평가 결과를 보면, 현지 농민들은 이앙기 부품 조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한, 교육을 받은 현지 농가 88명을 대상으로 2025년 11월부터 12월까지 약 2개월간 수행된 설문에서 교육받은 기술(농기계)을 적용하지 못한 이유(복수응답)로는 ‘비용 부담·자금 부족’이 60.2%로 가장 많았고 ‘필요 장비·자재 부재’ 37.5%, ‘농장 여건에 부적합’ 31.8%가 뒤를 이었다. 이 문항은 교육 내용 중 적용하지 못한 항목이 있는지를 물은 것으로, 아래의 기술 적용률과는 별개 문항이다. 교육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육이 끝난 뒤 기계와 부품에 손이 닿지 않아 생긴 결과다.
교육 성과에 대한 현지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교육 참여 농가(88명 대상)의 90.9%는 배운 기술(농법)을 현재 적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배운 기술을 다른 농민에게 전파했다는 응답도 85.2%에 달했다. 문제는 그 성과를 떠받칠 기계가 돌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업으로 조성된 농업훈련센터에 지원된 트랙터와 이앙기가 농가에 대여되지 않으면서 농민들은 자비로 중고 농기계를 사거나 현지 민간업체에서 빌려 쓰고 있었다. 농기계를 통한 생산비 절감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중국산 150마력 8000만 원, 한국산 100마력 1억 5000만 원
개발도상국 농가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산 농기계는 필요 이상으로 비싸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원 단계에서는 무상으로 들어가지만, 고장 이후 부품 교체와 정비 비용은 결국 농가와 수원국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정상훈 전 코이카 세네갈 프로젝트 매니저(PM)는 “세네갈에서 중국산 트랙터는 150마력급이 8000만 원 선인데 우리는 100마력급이 1억 5000만 원까지 간다”며 “수원국 입장에서 비싼 농기계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전 PM은 “수원국이 정비비를 감당하지 못해 기계가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비 인력 1회 파견에 2000만~3000만 원…A/S 공백의 구조
현지에 한국 농기계가 일정 규모로 보급돼 있지 않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진출을 꺼리고, 애프터서비스(A/S) 센터와 유통망은 사실상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정 전 PM은 A/S 공백을 기업의 의지가 아닌 구조의 문제로 봤다. 그는 “아프리카처럼 먼 나라는 정비 인력을 한 번 보내는 데 통관까지 합쳐 2000만~3000만 원이 든다”며 “10억 원어치 납품해 놓고 그 출장을 몇 번씩 반복할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해법으로는 원조 수단을 묶어 최소한의 물량을 확보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정 전 PM은 “무상으로 일정 물량을 깔고 유상으로 저리 자금을 붙여 규모가 만들어져야 서비스 업체가 따라 들어올 수 있다”며 “뒷단 없이 팔아만 놓으라고 하면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ODA를 통해 현지에서 우리나라 농기계에 대한 수요가 있어도 현지 수입업체가 없어 거래 자체가 성립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계 전 코피아 볼리비아센터 소장이 5개 주를 돌며 실증하자 현지 농가와 조합은 감자 수확기 15대를 사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그러나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대금을 받아 국내 업체에 송금하고 보증을 설 중간 수입·대행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 소장은 현지 직원들에게 법인 설립을 제안했지만, 직원들에게 초기 자본이 없어 무산됐다. 이 전 소장은 “농가는 돈이 있어도 수입을 하지 못한다”며 “대금을 받아 송금해 줄 업체가 하나만 있었어도 그때 15대는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 전 소장은 “시범사업이 진행된 볼리비아 산타크루스주에는 경지 100ha 이상에 150마력급 트랙터를 두 대씩 보유한 농가가 드물지 않다”고 전했다.
현지 고장의 80~90%가 맞춤형 사양 부재에서 발생
한국 농기계의 표준 규격이 현지 영농 여건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거듭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영농 여건이 다른 나라 중 하나가 볼리비아다. 국내에서는 씨감자를 잘게 절단해 심기 때문에 파종기 트레이 높이가 낮게 설계돼 있다. 반면 볼리비아에는 절단 체계가 없어 씨감자를 통째로 심는다. 국내 사양 그대로 들어간 파종기에 현지 씨감자를 올리면 트레이 밖으로 굴러 떨어진다. 차체 폭과 높이는 현지 재식 간격에 맞춰야 하고, 타이어 재질은 토양의 자갈 함량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감자 수확기도 마찬가지다. 땅을 진동시켜 감자를 캐올리는 진동식은 진흙이 많은 볼리비아 농경지에서 작업이 되지 않았다 진흙이 많은 농경지에서는 작업이 되지 않아 현지 농가는 체인식을 선호했지만, 체인식은 감자 껍질이 벗겨져 저장성이 떨어졌다. 이 전 소장이 이런 현장 반응을 본청과 제작업체에 전달하자 업체는 감자가 닿는 부위에 고무를 덧대는 방식으로 기계를 고쳤고, 2025년 4월 시연에서는 껍질이 거의 상하지 않았다.
농진청은 현지에 우리나라 농기계를 보내 이러한 부분을 실증하고 개선하는 후속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 수출농업기술과 안욱현 과장은 “우리나라 농기계가 현지에 닿기 전 현지화가 돼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현지에 보내져 몇 번 쓰다가 멈춰버리는 것”이라며 “A/S가 안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 나라에 맞는 농기계를 맞춤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발생하는 고장의 80~90%가 맞춤형 사양이 아닌 데서 비롯한다고 안 과장은 추산했다.
사양 조정은 단순히 성능을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고 안 과장은 강조했다. 그는 “기술 수준을 낮추는 것은 수직적인 개념”이라며 “여기에 더해 수평적인 개념에서 내용도 그 나라 환경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엔진 마력이 과도하면 현지 농가의 채산성이 맞지 않고, 엔진 구동 방식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설명이다.
사업 종료와 함께 끊기는 사후관리
지원사업이 끝나면 사후관리 예산과 전담 인력이 함께 사라진다. 유지·보수와 부품 교체를 책임질 주체가 없는 상태에서 기계는 방치 수순을 밟는다. 캄보디아 사례에서 확인된 ‘성과 창출 이후의 공백’과 같은 구조다. 정 전 PM은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정비 체계까지 넣으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형국”이라며 “농기계는 특성상 고장이 잦아 정비 서비스 체계가 가장 핵심인데도 보통은 고려하지 않거나 고려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설계 단계에서 관리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데, 요구하는 것을 다 넣어주다 보면 당장은 효과가 나타나도 결국 관리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②편에서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의 사례 등을 토대로 우리나라 농기계 ODA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